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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 전형직 의원
제목 전라감영과 3문 축성
일시 제231회 제2차 본회의 2006.03.14 화요일 [회의록보기]
질문내용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생지입니다. 전주라는 지명은 잘 아시다시피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 6년부터이며 1388년 고려 우왕 14년 최유경 관찰사가 전주부성을 쌓았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읍 석성은 둘레가 1280보, 동국여지승람에는 읍 석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5356척, 높이는 8척, 성안에는 223개의 우물이 있다고 그 규모를 전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군락을 이루고 있어 전주시에서는 1976년에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는 등 오늘에 전통문화중심도시 건설의 초석이 된 것은 그간 주민의 희생과 동참으로 전주의 명물이 탄생되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구도심 전체를 역사도시로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파괴되고 홀대당한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을 다시 일으켜 제자리에 세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고 본 의원은 주장하고 싶습니다.

2006년 전주시 주요업무계획은 유인물로 대치하겠습니다.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많은 예산이 투여될 때마다 그 사업의 목적성 보다는 경제논리에 휩쌓여 그간 애써 어렵게 가꿔온 우리 소중한 전통문화와 그 근본을 이루는 정신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입니다. 그저 한옥보존차원과 관광위주의 시책으로 전주의 혼이 없는 도시에 불과하다면 일회성 방문객으로 만족하지 않도록 모든 사업을 재검토 바랍니다. 지금 전통문화특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삶의 정을 느낄 수 없는 단순한 상혼만을 불러일으키는 전시장화로 변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본 의원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주실 것과 현장답사와 발굴을 토대로 고증된 자료에 의하여 과감한 투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주시의 도시장기발전계획이 그저 도로망 구축위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시기반시설을 더 과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목표설정없이 이루어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제라도 환경과 건축이 함축된 과학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목표설정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전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정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신시가지와 구도심권을 균형발전하는 조화를 이루려면 문화유산 복원만이 그 해결책이라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

본 의원은 지난 제222회 임시회의 제2차 본회의시 전통문화중심도시조성과 한옥마을 특성화 사업의 문제점에 대하여 시정질문한 바 있습니다. 다시 문화유산을 복원하여 구도심권과 신시가지를 균형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대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전라감영 복원과 3문 축성을 주장합니다. 중앙동 4가 1번지, 전라감형 복원은 차질없이 선화당, 포청루, 내삼문이 함께 추진되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의 행정중심이었다는 점 외에도 1984년 동학혁명 당시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가 대단히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전라감영과 객사, 경기전과 향교 그리고 한옥마을, 전동성당과 치명자산, 가톨릭센타 등이 전주역사 도시의 중심이 될 것 입니다. 또한 남문은 지금의 2층이 아니라 3층으로 호남에 제일 자랑으로 명견루라 불리였고 서문은 상서문, 동문은 판동문, 북문은 중차문이라 명하여 2층의 문루를 갖추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1767년 (영조43년) 3월 21일 이른바 정해년 화재로 남문과 서문이 소실되어 이후 다시 중건하여 남문은 풍남문, 서문은 패서문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1775년 (영조51년) 동문은 완동문, 북문은 공북루라 하였으나 이후 전주부성은 일제 조선통감부를 두던 1905년 모두 헐어버리고 오늘의 풍남문만이 보존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밖에 후백제의 왕도로써 전주의 영광스런 역사를 살리기 위해 견훤성터에 동고산성, 남고산성의 성곽복원을 돌 하나 기와 파편 하나라도 더 손실되기 전에 발굴복원계획을 서둘러야합니다.
답변자 : 부시장 이경옥
제목 전라감영과 3문 축성
일시 제231회 제2차 본회의 2006.03.14 화요일 [회의록보기]
질문내용 먼저 전라감영 복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원님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전라감영은 조선 개국 원년인 1392년에 호남지역은 물론 제주지역까지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으로 설치되었고 구 도청사부지에 1951년 경찰서 무기고 폭발사고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조선개국의 본향인 전주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구도심활성화 및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사업의 주요사업으로써 그동안 복원방안 및 규모결정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으며 작년도에 1억원을 투입해서 복원자료 수집을 위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복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할 계획으로 현재 도와 문화재청에 발굴조사 승인을 신청 중에 있고 6억원을 투입해서 4월부터 착수하여 연말까지 현재로써는 완료할 계획입니다. 금후 발굴 조사결과를 근거로 우선 현재의 도 지정문화재에서 앞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되도록 저희들이 노력을 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발굴조사결과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복원방안을 설정하겠지만 여기에는 의원님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문화재청, 전북도와 긴밀히 협조해서 복원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어서 풍남문을 제외한 동·서·북 3대 성문의 복원에 대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4대 성문의 경우 1389년 창축한 후 전주의 역사를 지켜오다가 1907년 일제의 도시계획정비로 동, 서, 북문이 헐리고 남문만 현존하여 오던 중 지난 1980년 역사적 고증절차를 거쳐 옹성과 종각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현재 동문, 서문, 북문 자리에는 1991년 표석을 설치하여 4대문 위치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급격한 발달로 기존 성곽위치에 도로 및 건축물이 형성되어 있어 현시점에서는 3대 성문의 복원에는 앞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검토와 시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요되는 예산이 막대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언젠가는 이것은 필요하다, 저도 이렇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동고산성 등 후백제 문화유적의 복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후백제의 왕도로써의 전주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지난 1991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해서 2004년까지 1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가지고 남고산성의 성곽 복원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동고산성 복원을 위해서 현재 전라북도에 형상변경 승인을 요청 중에 있고 문화재청의 형상변경 승인이 나는대로 이미 확보된 3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국·도비를 적극 지원 받아 조속히 복원해서 우리고장의 중요한 역사문화 자산으로 관리토록 해나가겠습니다. 또한 후백제 문화유적복원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다음달에 용역을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한 타당성조사와 논리를 정립하고 지역 전문가와 정치권이 협력하여 전통문화도시사업과 같이 제2의 우리의 비젼사업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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