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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 태광호 의원
제목 4분자유발언
일시 제181회 제2차 본회의 2001.08.04 토요일 [회의록보기]
발언내용 안녕하십니까? 전주시의회 의원 태광호 의원입니다.
행정자치부 산하 정부기록보존소에서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기록물의 보존과 전산화 차원에서 대지 3만여평, 연건평 1만1천여평 규모의 신규서고를 추진하고 있으며, 2002년도 조사설계 용역을 실시하여 2007년 완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앙 행정기관의 생산문서 수집, 대통령 기록관 설치, 통일시대까지를 대비한 사실상의 본소 역할에 의거하여 신규서고의 위치를 수도권으로 설정한다하며, 설상가상으로 경기도 구리시에서 시청 인접 공용부지를 후보지로 제시하고 나서고 있으니 전주에 정부기록보존소의 신규서고가 유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본 의원으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전주시가 그리고 전주시의회가 그리고 전주시민들이 하나와 같이 나서 정부기록보존소가 전주에 유치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꼭 전주에 유치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를 맛과 멋의 고향, 예향의 도시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맛과 멋의 고향이라기 보다는 역사를 지켜온 고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남대문이지만 가치를 따져 국보의 일련번호를 붙인다면 진정한 국보1호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151호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대왕으로부터 시작하여 25대 임금인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1,893권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역사기록으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고민, 번뇌, 때로는 음모와 살육까지도 낱낱이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법률, 경제, 교통, 통신, 사회풍속과 과학, 미술, 음악,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망라하고 있어 그 기록의 자세함은 전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역사기록으로 왕의 통지행위에 관한 기록에서 시작하여 심지어는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기록한 그야말로 역사의 보고입니다.
이러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전주 경기전에 설치되어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모두 네곳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이 또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592년 선조 25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조선침략 선봉군 제1군 18,700명을 실은 칠백여척의 대선단이 부산 앞바다에 몰려들어 옴으로써 임진왜란은 시작되었습니다. 4월 14일 부산진 점령을 시작으로 4월 25일 상주 점령, 4월 28일 충주 점령, 5월 2일 한성 점령까지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있던 전주를 제외한 세곳은 임진왜란 시작 15일만에 모두 점령당하였으며 그 와중에 보관중이던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같은해 6월 왜적은 금산에 출현하였는데 당시 금산은 전라도 땅으로 왜적이 전주로 진입하는걸 뜻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정란 장군은 전주 인근의 의병을 모집하여 전투 태세를 갖추었으며, 동문수학하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은 경기전으로 달려가 경기전을 지키던 참봉 오희길과 의논하여 태조에서 명종에 이르는 13대의 실록 804권과 태조 영정을 수레에 싣고 정읍 내장산으로 숨어들었으니 내장사에서 금선계곡을 따라 금선폭포를 향해 약 40분정도 올라가면 만나는 용굴암이 바로 그곳입니다.
3개월이 지난 9월 28일에는 더욱 안전한 비래암으로 옮겼으며 이들은 조선왕조실록을 위해 번갈아가며 밤낮으로 수직을 섰는데 다음해 7월 11일 왕명에 의하여 충청도 아산으로 옮겨갈때까지 내장산에 들어와 370일동안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안의와 손홍록이 함께 수직한 일수가 53일이며, 안의가 혼자서 수직한 일수는 174일, 손홍록이 수직한 일수는 143일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후 1597년 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안의와 손홍록은 다시 가동 30여명을 거느리고 아산으로 달려가서 조선왕조실록을 강화도로 옮겼습니다. 이때 안의는 연로하여 신병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손홍록은 1월 27일 강화에서 다시 해로로 해주를 거쳐, 청천강을 거슬러 올라 정주에 이르러서 안전한 곳을 물색한 끝에 묘향산 보현사 별전으로 옮겨져 안치되므로 무사히 보전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손홍록의 나이가 61세요, 안의의 나이 69세이니 노구의 몸으로 역사를 지키는 그 정신을 어찌 후손들이 이어받지 않겠습니까.
태조에서 명종까지의 180년 동안의 조선왕조실록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두 의사의 공이요, 역사를 지켜온 이 고장의 공인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지켜온 곳이 바로 이곳 전주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시대의 사고를 무주 적상산성에 설치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두개소에 사고가 설치되었던 곳도 전북지역입니다.
정부기록보존소가 조선시대의 사고를 뒤이어 우리의 역사를 보관하는 곳이며, 정부기록보존소의 주요 소장품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기에 역사를 지켜온 전주의 시민이자 시의원으로서 정부기록보존소가 전주에 유치되기를 희망하며 전주시와 전주시의회, 전주시민들과 전북도민들이 하나같이 정부기록보존소의 전주 유치에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행정자치부에서는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정부기록보존소의 위치를 수도권으로 선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정부에서는 중앙정부기관의 지역 이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부산에서의 선물거래소, 대전정부청사가 중앙정부기관의 지방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기업들의 본사마저도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여러 인센티브를 정부차원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부기록보존소가 부산과 대전이라는 지방에 위치해 있는데 새로 개설할 정부기록보존소가 꼭 수도권으로 가야할 이유가 없으며, 중앙정부기관의 지방분산을 위해서라도 정부기록보존소의 신규서고는 전주에 꼭 유치되어야 합니다.
때마침 전주사고 복원운동이 전개되어 이번 전주시 추가경정예산에 학술대회 예산이 편성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며 전주사고 복원운동이 정부기록보존소의 전주유치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전북도민과 전주시민, 전주시와 전주시의회 의원들께서도 역사를 지켜온 고장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시고 정부기록보존소가 꼭 전주에 유치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꼭 전주에 유치되어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 당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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